
수소는 정말 미래 에너지일까?
수소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수소차를 떠올린다.
수소버스, 수소충전소, 수소경제 같은 단어도 뉴스에서 자주 보인다.
그래서 수소는 아직 미래에나 본격적으로 쓰일 에너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수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정유공장이다.
조금 의외일 수 있지만, 현재 수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 중 하나는 수소차가 아니라 정유산업이다.
정유공장은 왜 수소를 사용할까?
이번 글에서는 정유공장에서 수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레이 수소, 블루 수소, 그린 수소는 무엇이 다른지 쉽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정유공장은 왜 수소를 사용할까?
정유공장은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납사 같은 제품을 만든다.
그런데 원유에는 탄소와 수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황, 질소, 금속 성분 같은 불순물도 함께 들어 있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것이 황(Sulfur)이다.
황이 많이 포함된 연료를 태우면 대기오염물질인 황산화물(SOx)이 발생한다.
그래서 현대 정유공장에서는 제품 속 황 함량을 매우 낮게 관리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수소다.
수소는 기름 속에 포함된 황 성분을 제거하는 데 사용된다.
쉽게 말해 수소는 정유공장에서 제품을 더 깨끗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
탈황 공정에서 수소가 하는 일
정유공장의 대표적인 수소 사용처는 탈황 공정이다.
탈황 공정에서는 석유제품 속 황 성분을 수소와 반응시켜 황화수소(H₂S) 형태로 분리한다.
예를 들어 경유를 만들 때 황 성분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동차 연료 품질 기준을 만족하기 어렵다.
그래서 경유, 항공유, 납사 등 여러 제품은 수소를 이용한 처리 공정을 거친다.
일반인 입장에서 비유하면 이렇다.
원유는 여러 불순물이 섞인 원재료이고, 수소는 그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정제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실제 반응은 훨씬 복잡하지만, 큰 그림은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Hydrocracker도 수소를 많이 쓴다
정유공장에서 수소가 많이 필요한 또 다른 공정은 Hydrocracker다.
Hydrocracker는 무거운 기름을 더 가벼운 고부가 제품으로 바꾸는 공정이다.
무거운 유분을 잘게 쪼개고, 동시에 수소를 붙여 품질 좋은 경유나 납사 등을 생산한다.
이 공정은 단순히 황을 제거하는 수준을 넘어 제품 구조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Hydrocracker는 정유공장의 수익성과 제품 품질을 높이는 핵심 설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수소도 많이 필요하다.
수소는 어디서 만들까?
정유공장에서 사용하는 수소는 보통 다음 방식으로 확보된다.
첫째, 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수소를 회수한다.
대표적으로 납사 개질 공정에서는 방향족 성분과 고옥탄가 성분을 만들면서 수소가 함께 발생한다.
둘째, 부족한 수소는 별도 수소 제조 설비에서 만든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천연가스를 원료로 수소를 생산하는 Steam Methane Reforming, 즉 SMR 방식이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₄)을 고온의 스팀과 반응시켜 수소를 만드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도 함께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소는 사용하는 곳에서는 깨끗해 보이지만, 만드는 방식에 따라 탄소 배출이 크게 달라진다.
그레이 수소, 블루 수소, 그린 수소는 무엇이 다를까?
수소는 색깔이 없다.
하지만 생산 방식에 따라 편의상 색깔 이름을 붙인다.
1. 그레이 수소
그레이 수소는 천연가스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로 만든 수소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소가 바로 그레이 수소다.
생산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정유공장에서 기존에 사용하는 수소도 대부분 이 범주에 가깝다.
2. 블루 수소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와 출발점은 비슷하다.
천연가스로 수소를 만들지만,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저장하거나 활용한다.
즉, 기존 수소 생산 방식에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를 붙인 개념이다.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지만, 포집률과 저장 안정성, 경제성이 중요한 과제다.
3. 그린 수소
그린 수소는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만든 수소다.
태양광이나 풍력 전기를 이용해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기 때문에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이 매우 낮다.
가장 깨끗한 수소로 평가받지만, 아직은 생산 비용이 높고 대규모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와 수소는 왜 함께 이야기될까?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전기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어야 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많이 늘어날수록 남는 전기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해진다.
이때 남는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들 수 있다.
전기를 바로 저장하기 어렵다면, 수소라는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린 수소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자주 언급된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전기분해 설비, 물 사용, 저장·운송 인프라, 생산 비용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정유공장의 수소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
국내 정유사 ESG 보고서에는 정유공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수소 사용량이 회사별로 명확하게 공개되어 있지는 않다.
대신 수소 사업, 청정수소 프로젝트, 수소충전소, 수소 생산 기술과 관련된 내용이 주로 공개되어 있다.
해외 자료를 보면 정유산업이 수소의 주요 소비처라는 점은 분명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수소 수요는 2024년 약 1억 톤에 가까운 규모이며, 전통적으로 수소를 많이 사용해 온 정유와 산업 부문이 주요 소비처다.
미국 서부 지역 사례를 보면 정유사들이 외부에서 구매하거나 자체 생산해 사용하는 수소 규모가 하루 수억 입방피트 수준에 이른다.
이는 수소차 몇 대를 충전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공정 설비를 24시간 움직이는 산업용 원료 규모다.
앞으로 정유공장 수소는 어떻게 바뀔까?
정유공장에서 수소 사용 자체가 사라지기는 어렵다.
연료 품질 기준은 계속 강화되고 있고, 중질유를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하는 공정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기존에는 그레이 수소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블루 수소와 그린 수소가 더 많이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소 사용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하는 수소의 탄소 배출을 낮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결국 수소는 정유공장에서 단순한 원료가 아니라 탄소중립 전략과 연결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마무리
수소는 미래에만 쓰일 에너지가 아니다.
이미 정유공장에서는 오래전부터 대량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소는 석유제품 속 황을 제거하고, 무거운 기름을 더 가치 있는 제품으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수소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탄소 배출량은 크게 달라진다.
그레이 수소는 현재 가장 널리 쓰이지만 탄소 배출이 크고, 블루 수소는 이산화탄소 포집을 통해 배출을 줄이는 방식이며, 그린 수소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생산하는 저탄소 수소다.
앞으로 정유공장의 경쟁력은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얼마나 깨끗한 에너지와 수소를 활용하느냐와도 연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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